■ 공간 민들레 ■


점심시간의 정치 2 15.06.18 13:52
seoulmate HIT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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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한 사진은 오늘 점심시간, 필립이 설거지 몰아주기 가위바위보를 하다가 결국 자신이 맡게 된 접시 무더기다. 필자는 이번 사건에 대하여 한 가지 문제제기를 하려고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이 사건은 단지 가위바위보에서 진 사건이 아니라 양극화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정치권의 각종 비리와, 특히 메르스라는 중동발 독감이 유행하면서 뜸해진 전 국민적 논의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이른바 경상남도 무상급식 논쟁으로 대변되는 복지의 문제다. 복지는 기본적으로 양극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의 하나로서 다분히 정치적인 문제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원의 분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관점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자원의 분배 비율에 대한 것으로 단순화 될 수 있다.

자원의 분배 비율이란 가령 이런 것이다. 새누리당의 유승민 의원이 한 번 정리한 적이 있는 것처럼 세금을 많이 내고 많은 복지혜택을 제공받을 것이냐(고부담 고복지), 아니면 세금을 적게 내고 복지혜택을 줄일 것이냐(저부담 저복지)의 문제다. 그리고 극단적으로 말해 세금을 100% 걷어서 모든 것을 국가가 책임지는 사회를 완벽한 공산주의 사회라고 한다면 세금을 전혀 걷지 않고 국가의 기능을 정지시켜 버리는 것을 완벽한 신자유주의 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러한 극단은 어느 쪽으로나 위험하고 단지 각 나라에 주어진 환경에 따라 국민들의 합의를 통해 그 부담 정도를 결정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현재 중부담 저복지의 상황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 부담과 복지의 불균형이 생기는 것은 우리나라 정부의 구조가 가지고 있는 어떤 모순이나 한계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이야기는 그 구조적 모순, 곧 부정부패나 각종 낭비 같은 것을 논하려는 것은 아니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일단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다만, 어느 경우라도 복지수준을 바꾸려고 한다면 부담의 수준 또한 논의가 되어야만 한다는 점에서 이 문제에 관하여 접근해보기로 하자. 과연 우리나라는 복지수준을 높일 수 있을까?

복지수준의 향상을 위해 부담수준도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는 잠시 멈칫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 부담이 자신에게 돌아올 것인가에 대한 불확실성이 주는 불안감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불확실성과 불안감의 이면에는 앞에서도 얘기한 것처럼 부패한 정부에 대한 불신도 한 몫 하겠지만, 정말 순수하게 그 혜택이 자신에게 돌아올 것인가에 대한 불확실성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은 아무래도 중산층에서 가장 많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상류층도 아니면서 하층민도 아니기 때문에 복지 부담에 대한 영향은 당장 받으면서도 혜택은 당장 받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부담감에 대한 문제는 민주적 의사소통을 통한 사회적 합의과정을 통하지 않고는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고, 이 부담감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우리나라에서 복지수준 향상에 대한 기대는 요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서 나는 잠시 북유럽국가에서 어떻게 사회주의가 가능한지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 왜냐하면 복지논쟁이 붙기만 하면 북유럽 국가의 사회주의 사례가 꼭 나오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실제로 그들 국가들이 사회복지를 정말 잘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품을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북유럽 국가의 제도를 있는 그대로 가지고 오면 우리나라에서 구현이 가능한가 하는 문제다. 나는 이것이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복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큰 몫을 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북유럽국가에서 사회주의가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심지어 그중 몇은 민주국가가 아닌 입헌군주제 국가다.) 북유럽 국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 가운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과 크게 다른 것은 무엇이 있을까? 거기에 대해서 우리는 크게 두 가지 차이를 지적할 수 있겠다. 그중 하나는 '공공성'에 대한 인식의 차이이고, 다른 하나는 생활수준에 대한 인식의 차이다. 전자는 공과 사를 구분하는 문제인데, 지금 이 글에서 필자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후자다. 그것은 양극화에 대한 문제다.

북유럽국가에서 사회주의가 가능한 이유 중 하나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과 최대한의 조건이 사회적으로 합의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가령 법정 최저생계비용을 정해놓은 상태에서 그 이하로 내려가는 사람들을 국가가 지원해주는 형태로 구현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제도는, 그 최저생계비용이 턱없이 낮기는 하지만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에는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물가가 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모든 경제격차의 문제는 단순히 어떤 절대적 숫자의 충족을 통해서 해결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한정되어 있는 자원을 분배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곧 못 가진 자가 들고 있는 10,000원짜리 한 장의 가치는 '10,000원'이라는 수치가 결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격차에 의해 결정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북유럽국가에서는 대개 최저생계수준뿐만 아니라 최고생계수준에 대해서도 사회적인 합의가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게 해야지만 최저생계수준을 정해놓는 것이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어느 정도 수준 이하로 못 사는 사람이 있어서도 안 되지만,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수준 이상으로 잘 사는 사람이 있어서도 안 된다는 인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생계수준의 상한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이러한 인식의 문제는 우리나라가 사회적 복지제도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필히 개선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설거지의 분배 문제를 설명하려고 너무 먼 길을 돌아왔다. 다만, 나는 한 사람이 부담하는 설거지 양의 상한선을 우리가 합의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이 긴 글을 쓰게 되었다. 사실 오늘 필립이 설거지를 하게 된 접시의 수는 필립의 오늘 하루 생활을 완전히 망가뜨릴 정도로 많은 양은 아니지만, 이러한 세태가 어쩌면 우리 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자초한 것은 필립의 책임도 크다. 먼저 가위바위보를 하자고 한 것은 필립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사건을 도박중독의 문제에 빗대어 설명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공동체의 책임에는 어떤 개인의 생활이 완전히 파괴되지 않을 수 있도록 제한하는 제도적 보장까지도 포함된다는 점에서 그것이 여전히 일부는 개인의 책임임에도 불구하고 공동체에 책임을 묻는 것은 정당하다. 그러므로 나는 이번 사건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한다. 그것은 한 사람이 한 번에 설거지를 할 수 있는 접시의 양에 대한 우리 민들레 공동체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부디 다음 자치회의에서 한 번 쯤 다뤄주기를...
잔뒤군15.06.18 20:55

음. 재밌는 글입니다만 아이들이 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전제한다면, 몇 가지 사실관계가 명확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최고생계수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라는 부분이 오해를 살 수도 있겠네요. 그 합의를 상징할 수 있는 특정 국가의 특정 제도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으면 의심을 살 가능성이 크겠네요.

그리고 세금부담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오로지 소득세 부분만 언급한 것도 오해의 소지가 있어 보입니다. 세금에 대한 이야기는 법인세와 부가가치세를 총괄하여 공학적인 적절치를 찾아내야 하는 일이므로 무척 복잡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인식 변화를 통해) 소득세를 올리면 해결된다는 식의 아이디어만으로는 복지국가설계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아, 이 모든 이야기는 아이들이 볼까봐 염려되는 마음에 덧붙인 것이니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어 보아요. 전 경제 문제를 상당히 좋아한답니다 :)

이런 이야기(설거지의 부담과 공동체 문제)는 몇몇 아이들과 흥미를 갖고 진행해도 괜찮을 듯 하네요. 접시의 양 문제라 ㅎㅎ 필립의 생활이 파괴되었으니 이걸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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